10분 빨리 앞당겨져 있던 시계를 다시 뒤로 늦췄다.

            2017년 02월 06일
            휴직 첫날

어제 11시30분즘 잠들었던것 같다. 아침에 7시 40분에 눈이 떠졌다. 이렇게 알람없이 일어나면 기분이 참 좋다. 알람없이 일어났는데도 생각보다 이른시간이면 또 기분이 좋다. 오늘 점심먹기 전까지 뭘 하면 좋을지 대충 정하자는 생각을 했다. 10시즘 운동을가고 운동마치고 마트에서 장을봐서 집에서 점심먹기.. 그러다가 시계를 봤다. 늘그랬드시 분침이 10분 앞당겨져 있었다. 그런데 문득 굳이 시간을 10분 앞당겨놔야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직장인일 때야 시간을 앞당겨 놓는 것이 지각예방에 좋겠지만 이제 나는 그럴필요가 없지 않은가?

분침을 앞당겨 놓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각하지 않거나 무엇인가를 제 시간 안에 처리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편히 쉬어야 하는 집 안에서 조차 시간을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한다. 근면 성실이라는 구호는 내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었다. 고도로 생산성이 높아진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의 흔적이다.

시간의 개념이 초 단위로 세분되고 지키지 않으면 큰일 나는것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이라는 시스템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 인류는 6백만년 동안 시간의 개념을 어떻게 인지하며 진화 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 긴 기간 대부분을 "시간 ==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 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뀐 시점은 고작 몇 백년 밖에 안됐다.

그것을 통해 좋은 제품만이 아니라 두려움이 양산되기도 했다. 목표한 시간이 됐을 때,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달성하지 못한경우 마주하는 일종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 아니라 사회와 관계를 통해 학습된 두려움이다. 우리는 어릴때부터 지각을 했을때 혼나면서 자랐다. 제 시간안에 모든 문제를 풀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어 경쟁에서 뒤쳐지곤 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가혹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10분 앞당겨져 있던 내 시간을 원래대로 늦춘 행위는 30년 동안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폭력에 맞서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릴 때부터 힘센 아이들한테 복수하는 상상만 해봤지 보복이 두려워서 상상이 현실이 된 적은 없었다. 살짝 통쾌하다. 분명 1년 동안 할 일들을 통해 이 사회와 시스템 속에서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제 1년 동안 수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려움은 피해야할 대상이 아닌 맞서야할 대상이라고 다짐해본다. 앞서 얘기했드시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계의 분침을 앞당겼다는것 깨달았다. 보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들에 맞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1 나는 분/초단위의 세밀한 시간 개념 자체가 1만년전 인류에게는 생존에 필요없는 개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렇다면 이런 시간개념이 언제부터 인간의 생존에 필요했을까. 근대 산업화 사회 이후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과 봉건제의 해체로 자유로워진 개인은 도시로 나가 자신의 노동력과 임금을 교환했을 것이다. 그에따라서 두가지 시간 개념이 새롭게 등장했을것이다. 첫번째는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는 프로세스에 필요한 시간. 두번째는 그에따른 노동자의 작업 시간과 공장에서의 근무시간. 현대인이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 1만년전과는 다르게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다. 산업혁명 이후 더욱 복잡해진 노동 환경과 철저해진 시간개념이 등장함으로써 현대 인류는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으면 노동기회를 얻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생존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권력관계가 형성되다. 그것이 결국 폭력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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