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것을 사랑한다

            2017년 06월 10일
            파키스탄

이른 아침, 천장 조명이 켜졌다. 지금 전기가 들어온다는 신호다. 더 잘 시간이었지만 정신이 번쩍들었다. 불이나케 일어났다. 돼지꼬리 열선 히터로 물을 데웠다. 아침식사를 위해 계란도 삶고, 뜨끈한 모닝 커피물과 샤워를 하기 위한 더운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휴대폰과 몇몇 디바이스를 충전했다. 무척 이른 아침이었지만 반드시 일어나서 해야할 일이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언제또 전기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도시를 제외하고 내가 경험한 파키스탄 전 지역의 마을은 이렇게 전기사용이 무척 제한적이었다. 대부분 건물이 디젤 엔진을 이용한 소형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어딜가도 한국처럼 24시간 전기가 들어오는 숙소 및 가게는 없었다.

이곳에서 물은 정말 소중하다. 한국에 있을때 사무실에서 언제든지 마실수 있었던 정수기가 떠오른다. 냉수 온수 어떤물이든지 먹고 싶을 때 마실수 있었던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물. 심지어 수 리터를 한번에 받을 수 있다. 그땐 몰랐지만 여행을 나온 지금 그 정수기가 참 소중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따듯한 차를 마시고 싶으면 그냥 정수기에서 받으면 된다. 그것도 공짜로 무제한 마실수 있다. 반면 여기서는 일단 슈퍼에가서 1리터짜리 물을 사서 전기가 들어오는 시기에 돼지꼬리 히터로 물을 댑혀야 한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하루중 몇 시간 안되기 때문에 아무떼나 마실 수도 없다. 짜이를 마시기 위해 인스턴스 짜이 팩을 몇개 사왔는데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아서 먹지도 못한다. 다행이 커피가루는 팔지만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까페나 식당에가서 먹으면 되겠지만 지금은 이슬람 금식기간(라마단)이다. 낮시간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다. 그리고 외국인이 그나마 많은 훈자를 제외하고 파키스탄에서 까페를 보지도 못했다. 설사 문을 열었다고 해도 비용절감이 최우선 과제인 배낭 여행자가 아무떼나 먹고 싶을때 사먹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밥이 먹고 싶다. 해가 떠있는 도중에는 문을 연 식당이 없다. 하필이면 1달 동안 금식을 해야하는 라마단에 파키스탄 여행을 와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은 금식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아침과 낮시간에 문을 연 식당 자체가 없어, 밥을 먹기가 어렵다. 그나마 그동안 노하우가 생겨서 아침식사는 숙소 방안에서 직접 해먹는다. 미리 사놓은 우유와 콘플레이크 계란과 과일등으로 떼울수 있다. 그러나 점심은 불가능하다.

내가 지금 머무는 파키스탄 쇼그란 마을은 작은 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할게 없고, 사람이 없고 경치도 좋고 한적한 곳 쇼그란 마을에서 벌써 5일째다. 그동안 여행지의 소리를 듣자는 생각으로 영화도 거의 안보고 음악도 거의 듣지 않았었다. 그러나 가끔씩은 이곳에서도 무료함을 달래고 싶을때가 있다. 내가 소비할 수 있는것이라곤 노트북에 담아놓은 영화 몇 편과 휴대폰에 있는 몇 안되는 음악이다. 벌써 영화를 두편이나 봤다. 오늘도 한편 볼까 생각중이다. 한국에서는 영화관 혹은 왓챠나 어둠의 경로를 언제든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영화. 여기서는 보고싶은 영화를 선택할 수 없다. 그저 가지고 있는 극히 작은 것들을 아끼고 아껴서 먹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음악을 들을때 미리 다운로드 받을 필요없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무한정 들었었다. 심지어 내가 듣고 있는 곡이 어떤곡이며 누구의 곡인지도 모른채 스트리밍 서비스가 선곡 하는대로 듣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음악을 미처 다운로드 받지 못한채로 출국했다. 그 뒤 매우 느린 속도의 와이파이 환경속에서 아주 소수의 곡과 앨범을 받아 놓은 상태다. 그 소수의 음악을 계속 돌려 듣고 있다. 내가 그나마 가진 음악들이 너무 소중하다.

이곳에 와이파이는 없다. 아주느린 현지 유심카드로 테이터를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불가능하고 메신쳐 대화나 웹 브라우저를 아주 느리게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나는 데이터 1MB 하나 조차도 소중하다.

현금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미처 ATM에서 현금을 뽑지 못한상태로 이곳에 왔다. 내가가진 현금은 약 5000루피. 숙박비 교통비 포함 넉넉잡아 하루에 2천 루피정도 사용한다고 쳤을때 2일 밖에 머물지 못한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기로 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ATM만 있으면 언제든지 현금을 뽑을 수 있지만 이곳 쇼그란은 산꼭데기에 위치해있어 ATM이 있는 마을까지 가기가 쉽지가 않다. 산에서 내려가려면 지프를이용해야하는데 그 비용이 하루 숙박비에 버금간다. 나는 더욱 철저히 현금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화폐 라는 교환가치를 지닌 작은 종이 쪼가리가 이전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풍족하게 사용하고 쉽게 가질 수 있었던 모든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한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펑펑 썻던 전기, 언제든지 사용가능 했던 온수. 배고픔을 느낄세도 없이 목구멍으로 들어갔던 음식들, 언제든지 연결되어 있어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가족과 친구들, 어디서나 신용 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ATM이 널려있어 돈쓰기 무척 편했던 환경, 보고싶으면 보고 듣고싶으면 무엇인든지 들을 수 있었던 수 많은 컨텐츠들. 내가 미처 풍족하다고 인지하지도 못했던 환경이었다. 그렇게 부족한것들이 점점 소중해진다. 내가 풍족하게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대상들이 부족해지니 모든것들이 소중해졌다. 1%라는 배터리에 표기란 숫자 하나 까지 작은 대상 하나하나가 지금 내게 소중한 것들이다.

죽기 때문에 사랑한다. 인간이 사랑하는 대상은 모두 죽는것들이다. 죽지 않는것은 금방 관심사에서 멀어진다. 곧 부족해지고, 떨어지고, 사라질 대상이 소중한것이지, 내 곁에 영원히 남는것이 소중한것이 아니다. 우리가 제품을 구입했을때 느끼는 기쁨이 곧 소멸하는 이유는 그 제품은 영원히 내곁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영생을 얻게된다면 아마 우리가 인류애 라고 불렀던 모든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모두 내 곁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는 타인을 사랑한다. 부모님을 사랑한다. 가족과 애인 그리고 친구를 사랑한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사랑한다. 그들과의 수 많은 갈등과 불협화음 속에서도 우리는 그들을 소중히 대하고 아낀다. 죽음을 통해 언젠가는 그들과 반드시 헤어지게 될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풍요 속에서만 살았던 나는 앞으로 부족함 속에서 살기로 다짐해본다. 존재란 부족함 속에서 더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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