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이슬람 문화, 이희수

            2017년 06월 03일
            파키스탄

파키스탄에 입국한 첫날, 과격한 종교라는 이슬람에 대한 내 고정관념은 철저히 무너졌다. 첫 도시인 라호르에서 첫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와 친절을 경험한 것이다. 수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혼자 여행 중인 나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들의 집에 초대도 받았고, 무료로 숙박을 제공받기도 했으며 식사마져도 공짜로 얻어먹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경험한 파키스탄은 전혀 위험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외국인을 보호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지역에서 시큐리티의 가이드를 받을수 있었다. 파키스탄 여행 몇일 만에 나는 그들을 믿게 되었다. 그들은 절대 돈으로 사기를 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 정말 안전하고 편안하게 파키스탄을 여행할 수 있었다. You are my guest 는 내가 여행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심지어 길을 묻다 도로에서 마주친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도와주며 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경험한 이슬람 문화는 헐리웃 영화와 미디어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사건사고가 전부였다. 그러니 이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만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슬람 대해 철저히 무지했던 것이다. 내가 다녀본 국가중에 파키스탄인 처럼 나를 환대한 사람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이슬람 종교의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무지와 오해를 사죄하기라도 하듯, 나는 이슬람 문화에 더 빠져들었고, 나는 그들의 문화를 더 이해해야만 했다. 내가 여행중 들고나온 전자책 킨들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무척 제한적이다.

그렇게 선택한 책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문화다. 그리고 이슬람은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미디어는 우리의 사고를 획일적으로 만든다. 내가 이슬람을 가장 많이 접하게되는 매체는 헐리웃 무비였다. 헐리웃 무비에서 이슬람 사람은 보통 테러리스트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의 극단 세력일 뿐이다. 절대 다수의 이슬람 은 평화를 추구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의 어원 인 살람 자체가 평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제 서야 내가 경험한 수많은 무슬림(이슬람 종교를 가진 사람)의 선함이 이해가 갔다.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는 두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알라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 하나님(GOD)과 동일한 신이라는 사실이다. 알라는 GOD의 아랍어 표현인것이지 새로운 신을 지칭하는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라 신"이라는 표현은 잘못된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성경인 꾸란에는 예수를 하나님이 보낸 위대한 선지자로 기록하고 있으며 최후의 날에 다시 재림한다고도 설명한다. 단지 그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이라고 받아드리지 않을 뿐이다. 이슬람을 기독교의 적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넣은것은 분명 기독교를 기반으로한 서구 강대국의 오랜 프로파간다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게 따지만 유대(태)인도 기독교의 적이어야 한다.

나는 여행 계획을 수정했다. 애초에 파키스탄의 유명 관광지인 훈자만 찍고 바로 터키로 이동할 예정이었던 나는 더오래 파키스탄을 여행하기로 했다. 훈자부터 이슬라마바드까지 작은 마을들을 찍으며 약 2주간을 더 여행중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는 평생잊지 못할 것이다. 그뒤 나는 다른 이슬람 국가를 더 여행할 예정이다. 다음 여행지는 중앙아시아로 변경 했다.

전세계 16억명. 세계 인구 4명중 한명은 무슬림이다. 진정으로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을 스킵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건지 알려면 반드시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을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을 읽을 뒤 나는 이슬람 문화에 더 깊은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 그리고 전세계 이슬람 국가에 도데체 어떤 일이 있었던건지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택한 다음 책은 #이슬람전사의탄생 (정의길 씀, 한겨례) 이다.

나는 파키스탄에서 무슬림 사람들의 생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에게 종교는 일요일에만 참석하는 행사가 아닌 삶 그자체였다. 그들은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선행을 배풀고 경건함을 유지한다. 하루 5번의 예배는 어떠한 장소에 있던지 관계 없이 유지된다. 지금은 파키스탄의 라마단(금식기간)이다. 그들은 해가 떠 있는동안 물한방울 입에 대지 않는다. 아무리 날나리 무슬림 친구라고 하더라도 하루 5번의 기도를 지키고 금식을 지킨다.

인간은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동물이다. 현대인이 믿는 대상이 신에서 자본으로 바뀐것 뿐이지 종교의 형태는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돈을 숭배하고 때로는 브랜드를 숭배한다. (동시대 가장 성공한 종교는 Apple이지 않나 싶다) 외계문명이 인간을 발견 했을때 그들은 인간을 신을 믿는 지적 생명체라고 정의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종교가 인류(공동체)를 생존에 유리하도록 만드는 일종의 선택압으로 작용 했다고까지 생각한다. 규모가 큰 공동체를 유지할 수록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고, 큰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공통의 사강과 신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사피엔스 참고) 그렇기에 종교를 갖는것, 의식을 행하는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종교인으로 살아온 나는 어느 순간 종교가 신이 만든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것임을 진정으로 깨달았다. 그뒤 나는 섭리의 세계에서 우연의 세계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종교는 내게 지성을 억압하는 감옥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슬림의 철저한 의식적 삶을 접한 뒤, 그렇게까지 발버둥 칠 필요 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간에게 종교와 의식은 뗄레야 뗄수없는 관계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30년을 종교인으로 살아왔고 그 관성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 같다. 굳이 종교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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