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의 트레킹에서 내가 배운것

                    2017년 05월 17일
                    인도

트리운드 트래킹을 마치며

이번 1박2일 트리운드 트래킹 중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5명이서 1박 캠핑을 하기로 하고 같이 올라 갔다. 점심즘 갑자기 비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걱정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모두 포기하고 하산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 다시올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캠핑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홀로 폭우속에서 1박을 결정 하고 다시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 길에 만났던 수 많은 인도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선뜻 먼저 인사를 건네왔고,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었다. 폭풍과 폭우가 몰아치는 구불구불한 산길 속에서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비가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잠시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기도 했다. 등산하는 내내 끊임없이 이런 험악한 날씨 속에서 하루를 버틴다는게 가능할까하는 의문과 걱정을 가지고 올라갔다. 도로 하산 해야만 하는 핑계거리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그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도 다들 옷도 그냥 대충 입고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하산하는 어떤 여성분 티셔츠에 큼직하게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Don't Give Up" 이라고 쓰여 있었다.

많고 많은 티셔츠 로고 중에 어째서 그 순간에 그 문장이 내 앞에 나타났을까. 이것은 우연이 만든 필연이었다. 그것은 숨겨진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 우주는 내게 포기하지 말고 이 날씨를 극복할것을, 나는 결국 해낼 수 있다는것을, 결국 최고의 경험을 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줬던 것이다. 나는 깊은 감동과 함께 울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이 자연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텐트를 설치하고 폭우속에서 생존하기. 오늘의 최대 걱정 거리였다. 트래킹 시작 전에 친구에게 텐트를 빌렸고 나만의 집을 메고 정상에 올랐다. 나 스스로 숙박할 장소를 선정하고 직접 텐트를 쳤다. 고정된 숙소나 집이라는 공간에 얽매이지 않았고, 숙박을 위해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거기서 극도의 자유로움을 경험했다. 다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텐트속에서 비바람을 피했다. 한 두시간동안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내가 만든 나만의 집에서 안전함을 느낄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텐트를 통해 느꼈던 최고의 희열은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기쁨이었다. 어떤것에도 얽메이지 않는 것이 그렇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정상에서 만났던 자연 또한 대단했다. 그런 변화무쌍한 날씨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 해보는 것이었다. 폭풍과 폭우가 몰아치는 정상 한켠에는 대자연이 만든 도시인 거대한 설산이 블록처럼 놓여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인간들이 만든 도시 다람살라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한번은 그 언덕의 능선을 타고 구름이 흘러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는데 장관이었다. 그렇게 끊임 없이 변화는 자연을 감상했다. 텐트에서 쉬는데 비가 그쳤다. 저녁 8시30분 이후로 더 이상의 폭우는 없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구름이 걷히며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큼직큼직한 별들이 거칠게 흩뿌려져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한쪽 구석에는 번개가 10초에 한번씩 계속 쳤고, 별빛과 번갯빛의 도움을 받아번쩍이는 설산이 한밤중에도 위용을 과시했다. 한쪽에는 작은 불빛들이 이글거리는 다람살라 도시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나를 둘러싼 그 장관은 정말 이상하고 특이했다. 이런 미친 날씨와 자연은 내 생에 처음이었다.

정상 곧곧에는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그곳은 격변하는 날씨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기도 했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가져오게 했다. 압도적인 자연속에 둘러 쌓인 그곳에서 우리들은 짜이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더 깊은 별을 관찰하기 위해 인간들이 만든 빛으로부터 다소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갔다. 거기 한 인도인 친구와 동행 했는데 별빛이 만드는 울퉁불퉁한 바위 틈에서 하늘을 보며 나눴던 대화는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1박2일 동안의 어드벤쳐를 통해 마침내 깨달았다. 단순히 유명한 장소 찍기 목적의 여행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온전한 나만의 경험을 하는것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이 된다. 만약 폭우와 폭풍이 없었다면 이번 트래킹은 그냥 보통의 등산에 그쳤을 것이다. 누구나 다 경험할 수있고, 블로그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말그대로 "트리운드 트래킹"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특별한 날씨와 고생스러움이 이번 여정을 "김지훈만의 트리운드 트래킹"으로 만들었다. 예기치 못했던 사건들로 가득 했던 이번 트리운드 트래킹은 이번 여행 통틀어서 가장 가치있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었다.

폰으로 찍었는데도 이정도로 별이 많이 나왔다.

정상에서 만난 태국 수도승, 추위와 싸우는 훈련을 하고있다고 했다. 내가 찍은 여행사진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중 하나.


압도적이었던 어제와는 다르게 평범했던 트리운드 하산길.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어폰을 꼈다. 그동안 여행의 소리에 집중하겠다며 이어폰을 낀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라즈에게 텐트를 돌려주기 위해 내가 머물렀던 맥그로드간즈가 아닌 bhagsu로 가기로 했다. 라즈가 거기 머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릎 고장이 우려되어 택시를 타고 나머지 길을 하산 했다. 드디어 인터넷이 연결되기 시작하여 라즈와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산위에서 통신이 되었다면 나는 하루 더 텐트를 빌려달라고 하고 1박을 더 했을 것이다. 아쉬웠다. 그렇게 좋을줄 누가 알았겟나.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이곳 bhagsu는 맥그로드 간즈 옆에 있는 마을인데 이곳에는 백인 천지 였다. 마치 백인들만의 여행지 인것처럼 그들 끼리끼리 앉아 있었다. 나는 한켠에서 자리를 잡고 라즈를 기다렸다. 라즈는 도착하자마자 모두 마치 익숙한 여행자인것 마냥 한쪽에 앉아있던 노부부에게 인사했다. 대단한 사교성이었다. 그는 아무하고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리고 친구가 된다. 그의 사교성과 자신감을 배우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합석하게 되었다. 다행이 나이가 많은 사람일 수록 영어로 말하는 속도가 느려서 대충 알아들을 수 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의 대화에 나는 낄 틈이 없었다.

나는 관찰 했다. 그들은 어떻게 대화하고 어떤것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하며 그들말을 경청하게 되는지 말이다. 그것은 스토리였다. 사람들은 타인의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다. 한 분이 본인이 어떻게 40년전에 이곳 인도에 오게 되었는지 그 여정을 쭉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작고 다소 빨라서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옆사람들의 반응을 보아 대단한 스토리임이 분명했다. 그런 삶의 스토리가 많은 사람이 되는것. 이전 내 30년 과같은 인생을 살면 절대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여정을 모두 마치고 나는 달라진 사람이 될까? 이 여정을 통해 많은 스토리를 얻게 될까? 그리고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이전 인생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오늘 할 이야기가 있었다. 트리운드 트래킹에서 받았던 대단한 경험 말이다. 그것을 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들은 내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에대한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다. 백인들 그룹 틈에있으면 언어도 딸리기 때문에 상당히 후달린다. 그럴때일수록 과감하고 자신감 있게 엉망인 영어라고 하더라고 떠들면 된다. 이번 여행 모두 끝나면, 나는 아마 영어를 잘하게 될것 같다. 그런 믿음이 생겼다. (한국인 동행만 찾아다니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텐트를 다시 돌려줌으로써 라즈와는 이것으로 헤어졌다. 그와 2일 더 동행할 수 있었지만 관계가 너무 오래되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것만 같았다. 다소 불편한 감정들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그는 내게 호기심이 없었다. 내 스토리를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백인 천지인 이곳에서 묶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이 친구를 통해 정말 많은것을 배웠다.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는법은 아주 인상적인 가르침이었다. 그는 아무 침대에서나 잘 수 있다. 한번은 침대위에 작은 날벌레들이 우글거렸는데 잠시 베드벅이 있는지만 확인하더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잠에 들었다. 인상깊었던 장면이었고 나고 그렇게 아무데서나 잘 잘 수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즈는 걱정말라며 9개월뒤에 너도 이렇게 될거라고 한다. 하지만 온갖 깔끔을 떠는 내가 과연 그렇게 될수 있을까. 어쨋든 어디서든 잘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것은 내가 원하는 매력적인 여행자의 모습인것은 분명하다.

여행자의 삶은 길에서 만난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환경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내가 라즈에게 본받고 싶은 두가지다. 이 특이한 녀석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것 같다.

나는 돌아와서 또다시 숙소를 구하는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녀서 그냥 250루피짜리 도미토리 룸에 묶기로 했다. 이번 여행 처음으로 도미토리룸에서 묶었다. 앞으로 이런일이 수두룩한데 미리 연습도 할겸 시도했다. 혹시 친구도 생길 수 있을지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자야했다. 저녁식사만 마치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자기로했다.

양념치킨이 먹고 싶어서 오랫만에 한국인이 많이 머문다는 일곱 도깨비 언덕 까페에 왔다. 한 50분 정도 걸리는 치킨을 주문하고 책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옆에있던 한국인 그룹이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서 집중 할 수 없었다. 한국인들은 정말 끼리끼리 잘 논다. 모두 보니 카톡 공유방을 통해 만난것 같다. 모두 즐거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나는 외롭고 고독하다. 한국인을 만나고 싶은 목적이 있지 않은이상 혼자서 절대로 한국인 식당에 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인들 그룹끼리 정말 친해지기도 하고 그안에서 별일들이 다 발생한다고 한다. 그런 경험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것 아닌가? 물론 그것도 즐거운 여행의 경험이겠지만 나는 왠만하면 한국인들 끼리만 다니는 여행은 피하고 싶다. (근데 전세계 어딜가나 한국인 그룹이 있다. 정말신기) 한국인 그룹에 끼여있으면 외국인이나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나는 좀 더 외롭고 어려운 길을 선택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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