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기도하고 팔달산 가라

            2017년 02월 15일
            휴직 10일째

포장이사 업체 선정


몇일 전에 달력을 보고 이사날짜가 (25일) 2주도 안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깜짝 놀랐었다. 그 동안 이사 준비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가뜩이나 포장이사를 하려면 일찍 알아봐야 한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며칠동안 걱정만 할 뿐 알아보지를 않았다. 지금 정해야할것들이 이사 말고도 한둘이 아니라 빨리빨리 이슈들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럴땐 내가 정말 한심스럽다. 뭐 하나 시작하는것이 왜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났는데 점심을 먹고, 포장 이사 업체 딱 한군데만 후딱 전화 해보기로 하고 내 인생 영화 아바타를 보기로 한다. 다행히 25일에 이사 가능하다고 한다. 가격은 32만원. 응? 생각보다 금방 알아봤다?! 한군데만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결국 한 두어시간정도 알아보게 되었다. 역시 일단 작게라도 시작하면 결국 하게 되긴 한다. 최종 35만원 이사짐 센터로 정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이사짐 센터 하나 정했는데 엄청나게 후련했다. 내 인생의 모든 문제 절반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진작좀 알아봐 놓을걸 이렇게 쉬운건줄 몰랐다. 전화만 몇군데 하면 되는거였는데 말이다. 어찌 됐건 결국 오랜문제 하나를 해결 했다! 별거 아닌데도 큰 성취감이 느껴진다.

도서관에 또 가다


사실 지난주 부터 엉덩이에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오늘까지 미뤄졌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좀 늦었다. 주사를 맞으면 수영을 못한다. 수영장도 20일 까지만 하면 끝나서 최대한 많이 가야한다. 병원에 갈까 그냥 수영장에 갈까? 결국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병원은 또 내일로 미뤄졌다. 내일은 반드시 가야지 ㅜ 왜 이렇게 게으른지 모르겠다. 애초에 수영장에 갔다가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짐을 챙겼다. 오늘은 레인 끝에서 끝으로 이동 14회를 했다. 시간은 한 25분 정도. 고작 30분도 운동을 안했는데 왜이렇게 나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수영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저녁시간인데 저녁을 안먹었다. 나는 왠만하면 이제 밖에서 사먹지 않으려고 한다. 식비 지출이 아까워서다. 고민하다가 가는길에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식빵을 사면된다! 식빵 한조각으로 허기만 달래놓고 이따가 집에가서 밥을 먹으면 된다. 그리고 식빵이 베스트 쵸이스인 이유는 나중에 발뮤다 더 토스터기로 구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식빵은 어차피 사야할 식재료였던 것이다! 딱 식빵 하나만 계산대에 올려놨다. 이 절제 능력 뿌듯하다 주인 아주머니가 "2만 4천원 입니다" 라고 하신다. 나는 웃겨서 2천 4백원 이라고 말해줬다. 아주머니도 빵 터졌다. 한장에 2천4백원짜리 고급 식빵 잘먹겠다고 하면서 나갔다. 이렇게 잘 알지 못하는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웃음들. 잊고 산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팔달 도서관 으로 올라가는 진입구에 들어가다가 차량을 만났다. 그 차량이 상향등을 깜빡이며 지랄을 했다. 내가 일방통행 길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옆으로 그냥 지나갈 수 있는데도 비쳐주질 않는다. 창문을 내리고 뭐라뭐라 한다. 나도 창문을 내리고 죄송하다. 일방통행인지 모르고 들어왔다. 좀 비켜달라. 라고 했다. 그런데 어이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또 일방 들어왔다고 뭐라하는거 아닌가. 이럴때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싸움을 각오하고 말해야한다. 다시한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제야 지나간다. 지겹다. 이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폭력들. 특히 운전중에는 수많은 폭력이 일어난다. 운전을 오래하면 오래 할 수록 성격 다 배릴듯 하다. 이 지긋지긋한 도시 빨리 떠나고 싶다.

요즘 셀프 인테리어에 대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하고 있다. 도서관에서도 그것에 도움 되는 책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당장 10일 뒤에 이사인데 감이 안온다. 지난번에 집 구경을 갔을때는 장판을 새로 깔았지만 걸레받이가 없었다. 걸레받이는 장판과 벽을 구분하는 띠 같은 것인데 아주 사소하지만 집에 걸레받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크다. 결국 내가 하거나 업체에 맡겨야 할것 같다.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봤었는데 업체에 맡겨야겠다.. 휴. 인테리어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철학은 무엇일까? 그것만 알면 그 기준으로 작업하면 될 텐데. 잘 모르겠다. 도서관 자료실에서 인테리어 서적을 4권 집어들고 책상에 앉았다. 작은집 워너비 인테리어, 열 평 인테리어, 숨고 싶은 집, 자린고비 인테리어 인테리어 서적은 사진이 많기 때문에 쓰윽 넘겨보기 좋다. 인테리어도 여행 계획 짜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1.어떤식으로 공간을 구성하면 좋을지 찾아본다. 2. 필요한 가구나 소품이 어떤것이 있는지 생각. 3. 도면상으로 배치해보고 4. 구매한다. 오늘 도서관에서 내가 한 일은 1번, 2번인것 같다. 집을 스윗홈으로 만들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집은 어느 정도 조명빨로 아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조명 관련 책 두권을 추가로 대출 했다.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 조명 데코 아이디어 101

먹고 기도하고 팔달산 가라


만약 수원에 여행오는 사람이 단 한군데만 추천 해달라고 한다면, 이 숲사람은 단연코 팔달산을 추천할 것이다. 팔달산은 수원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150m짜리 작은 산이다. 조선시대 수원 화성 성곽을 지을때 화강암을 제공했던 산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정상까지 성곽이 둘러져 있다. 팔달산은 내가 수원에서 4년동안 경험한 장소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밤에 팔달산 정상에서 보는 수원 시내의 야경은 정말 끝내준다. 연인끼리 가도 좋다. 혼자가 더 좋지만 팔달산은 등산하는 산이 아니라 약간 높은 산책로 같은 곳이기 때문에 야간에도 항상 불이 켜있고 길도 안전하다. 아직 안가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밤에 가보길 추천한다.

오늘 다녀온 이 도서관이 바로 팔달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이 숲사람이 그렇게 집착 하는 것이다. 도서관을 나오면서 간만에 팔달산 정상에서 야경을 보기로 했다. 오늘 날씨도 생각보다 따듯해서 적절했다. 아직 겨울이라 그런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없으니 더할나위 없이 좋다.

작년에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제품이 폭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 했었다. 그래서 그 다음 출시하는 모델은 마루타 테스트를 거치게 되었다. 그 제품에 내가 투입 되었었는데 하필이면 내가 담당하는 기능이 신규 컨셉이라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슈가 너무 많이 발생하는데 PL은 빨리 해결하라고 닦달하지, 이슈는 계속 쌓이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많았다. 이놈의 회사는 이슈가 시스템에 올라왔을 때 그날 해결하지 않으면 세상이 망할것처럼 사람을 쪼은다. 뭐 쪼으는 사람도 그 시스템의 피해자 겠지만. 그 때 정말 많은 고통을 받았다. 나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스트레스다.

그때 시간이 있을때 마다 찾았던 곳이 이 팔달산이다. 그렇게 이곳은 힘들고 지칠때 찾던 장소였다. 결국 내가 받는 고통의 대부분은 관계에서 발생하던 문제였는데, 이곳은 폭력이 난무하는 밀집 된 인간관계속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이다. 인간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다. 오늘 접하게 된 팔달산은 그런 고통에서 벗어난 뒤 찾은것이었기 때문에 또 새로웠다.

정상에 올라왔다. 번쩍이는 수원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보인다. 확 트인 시야가 저 밑에 도심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일들을 잠시 잊게 해준다. 멋지다. 내가 항상 여행을 통해 경험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멋진 경치다. 그런 경치가 집 근처에 있었다니, 자주 오던 곳이었지만 새삼 새로웠다. 혹시 여행중에 이 곳에 올라왔다면 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뭔가 더 특별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때 느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평범한 일상도 특별해 지는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렇지만 항상 쉽게 여행을 떠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일상이 곧 여행이 되면 어떨까? 그렇다. 일상이 곧 여행이 되는 것.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여행자의 삶을 사는것. 그것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자세다. 평범한 삶도 특별하게 느끼게 하고 충만하게 만들 것이다. 나중에 타지로 여행을 갔다가 다시 밋밋한 일상으로 돌아와도 계속 여행자의 삶을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염두해두고 떠나자.

paldal 팔달산 정상의 경치. photo by 숲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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