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날리를 떠나기로 하다.

                    2017년 05월 12일
                    여행 D+39, 인도 D+10, 마날리 D+6

오늘은 투어도 예약해놓지 않았고 뭘할지 모르겠다. 일단 아침을 먹으로 밖으로 나왔다. 첫날부터 가보려고 했던 blue elepunt 로 갔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아침식사가 썩 맛있지는 않았다. 네팔과 인도 모두 대부분 식당은 아침식사로 흔한 토스트 계란 해쉬 브라운 감자 등을 주는데 하나같이 그저 그렇다. 어제치 일기를 쓰려다가 포기했다. 너무 귀찮았다. 마날리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오늘 아침은 일기가 신나서 써지지 않았다.

오늘은 할일이 없어서 일어나자 마자 누워서 책을 읽었다. 계속 읽던 인포메이션이다. 식사를 마치고도 또 읽었다. 두꺼운 책이라고 하는데 킨들로 읽으니 생각보다 책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벌써 50%를 읽었다. 오늘아침에 9장 앤트로피 챕터를 읽었다. 대학때 열역학 수업도 들었는데, 부끄럽지만 엔트로피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몰랐었던것 같다. 그냥 시험 공부만 하다보니 잊은건지 아얘 처음부터 몰랐던건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도 엔트로피에 대해서 자주 언급되었었는데 그 개념이 정확히 와닿지 않았었다. 9장에서 드디어 그 개념을 설명해줬는데 이제야 이해가 가기시작했다. 엔트로피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이해한것 같다. 마치 중고등학교 때 수학시간에 함수에대해 그렇게 배웠지만 함수라는 개념을 프로그래밍 언어를 접하면서 제대로 이해했던것과 같은 맥락인것 같다.

이 우주에는 에너지와 질량과 같은 측정가능한 물리량이 있다. 엔트로피는 그런 물리량중 하나다.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어떤것을 정량화하기 위한 물리량일까? 만약 온도가 다른 두 물질이 붙어있을때 열은 높은쪽에서 낮은쪽으로 이동한다. 그 열(Q)이 이동할 때 일(W)이 발생한다. 열에너지가 운동에너지 등의 다른 유용한 에너지로 전환되는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두 물질은 같은 온도가 되어 버리는데 그때 일은없다. 다시말하면 닫힌 계에서 모든것이 같은 온도에 이르면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더 이상 에너지가 쓸모 없어지는것이다. 엔트로피는 바로 이 에너지의 무효성을 정량화한 물리량이다. 온도가 같아지는것, 모두 동일해 지는것이 아이러니컬 하게도 무질서해지는 것(높은 엔트로피)이다.

우주의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 (열역학 제 2법칙)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우주의 엔트로피가 최대가 된다면 우주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다. 모든 온도가 동일하기 때문에 운동에너지로 전환도 없고 일도 없을것이다. 이런이야기를 다룬 아이작아시모프의 짧은 단편 소설도 있다. 읽는데 30분도 안걸리지만 정말 대박 쩌는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이 글을 본 사람이 모두 읽었으면 좋겠다.

최후의 질문

기존에 내가 이해하던 정보란 인간이 의미를 부여한 정보였다. 그런데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정보에 의미를 제거하면 모든것이 정보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주의 모든것은 정보가 된다. 나는 정보를 지극히 제한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보는 인간이 창조한것이 아니라 우주자체가 정보이며 정보가 인간을 창조했다고 보는것이 맞다.

질서 정연한 상태(엔트로피가 낮은상태, 우주 초기상태)는 확률이 낮다고 한다. 그 확률이란 어떤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의미하는것 같다. 따라서 열역학 제 2법칙은 확률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이동하려는 우주의 경향이다. 그리고 그것이 거꾸로 이동할 수는 없다. 우주는 그렇게 비가역적이다 (non-reversable)

어떤 목적이 있는것처럼 행동하는것은 가역적이다. 그렇게 세포와 생명은 가역적인것 처럼 보인다. 비가역성은 우연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내 요즘 가장큰 탐구 주제인 "우연과 섭리"와도 얽혀있어서 흥미로웠다. 상자 안의 기체가 종류별로 분리되는것 처럼 가역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것이 불가능한것은 아니다. 단지 확률이 낮을 뿐이다. 따라서 2법칙은 통계적으로(확률상) 우주는 최대 엔트로피를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리하면 이렇다.

> (비현실 세계) 낮은 엔트로피 = 온도의차이 = 정보 얻음(?) = 질서 = 낮은 확률 = 섭리 = 목적성 = 필연성 = 가역성 (현실세계) 커지는 엔트로피 = 평형상태 = 정보 잃음(?) = 무질서 = 높은 확률 = 우연 = 비가역성

정보를 지울때 극미량의 열이 발생하며 엔트로피가 커진다. 결국 엔트로피란 정보가 얼마나 적은지 나타내는 척도. 내가 이해한것이 맞다면, 결국 우주의 최후에는 엔트로피가 최대가 될것이고 그 뜻은 더이상 우주에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의 최후다.

산책을 했다. 책에 나온 내용을 곱씹으며 생각을 연장했다. 걷고 있었지만 동공이 확장되어 시야가 흐려진 상태에서, 이 생각들에 나는 잔뜩 고무되어 있었다. 애초에 어떤 유명한 식당에 갈 참이었지만 도착해보니 아쉽게도 딱 그날 오픈하지 않았다. 그 뒤 뭘 해야할지 몰라서 아무도 없는 강가를 따라 숲길로 들어가려고 했다. 한 개가 따라왔다. 너도 같이 갈래?라고 했더니 정말 그 개는 내 앞을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녀석을 엔트로피라고 부르기로 했다. 엔트로피는 정말 오랫동안 나와 동행했다. 한참을 걷다가 두갈래의 길을 만났다. 나는 오른쪽길로 가고싶었는데 엔트로피는 왼쪽길로 갔다. 내가 나 이쪽길로 가고 싶다고 말했는데도 소용없었다. 나는 우이씨라고 소리 치며 어쩔수 없이 따라갔다. 실제로 개 앞에서 우이씨라고 말했다. 근데 결국 그 길이 맞는것으로 밝혀짐 쉬다 가다 반복하다 한곳에 앉아 책을 한참 읽다보니, 엔트로피는 어느 순간 떠나있었다. 원래 개보다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개는 이런 듬직한 구석이 있는것 같다. 개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되었다.

내 산책길을 가이드 해주었던 멍멍이 엔트로피.

개는 두 종류의 사람에게 복종 한다고 한다. 하나는 때리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먹이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것 같다. 인류의 역사에 수많은 폭력이 있었던 이유는 폭력이 타인보다 더 높은 서열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낮은 서열은 높은 서열에게 복종 하게 된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높은 서열을 얻기위해 육체적 힘을 사용한다. 모든 사회성 동물 집단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고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원시적이었던 이런 폭력은 문명이 시작되며 집단이 커지면서 종교에 의한 권력과 계급의 정당성으로 폭력의 형태가 발전했고. 현대 물질문명으로 넘어와서 또 형태가 달라지고 더 거대해 젔는데 그것은 자본에 의한 권력의 형태로 나타났다.

마날리를 떠나기로 하다.

어제부터 마날리에 익숙해진 느낌이들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는 길에 투어회사에서 다람살라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했다. 내일 저녁 8시 버스다. 버스 시간은 9시간정도 걸리니 자면서 가면된다. 인도에서 2주정도를 예상했는데 벌써 오늘 10일째다. 조금더 부지런히 이동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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