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못 미쳤던 7천루피 짜리 하루

            2017년 06월 01일
            파키스탄

오랫만에 느즈막히 일어났다. 그동안 5시에 깨다가 7시 정도까지 잔것 같다. 오늘은 Chilas로 가는날이다. 빵쪼가리랑 계란 밖에 없는데 200루피나 했던 맛없는 아침 식사를 한 뒤, 숙소를 나왔다. 손쉽게 스즈키를 타고 제네럴 버스스탠드로 이동했다. 이제 보니 이 버스스탠드가 지난번에 이슬라마바드에서 길깃으로 갈때 도착했던 그리고 우리가 잠을 잤었던 정류장이다.

어제 들은대로 9시 30정도에 버스스탠드에 도착했다. 칠라스로 간다고 했더니 아저씨가 페리메도스(Fairy Meadows)에 갈거냐고 한다. 어제부터 페리메도스가 자꾸 귀에 들린다. 어제 만났던 경찰 아저씨도 칠라스에 갈거라고 했더니 페리메도스에 갈거냐고 물어봤었다. 그래서 도데체 페리메도스가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봤다. 길깃과 칠라스 가는 중간에 라이콧 브리치에서 올라갈 수 있는 트래킹 코스라고 한다. 고민 했다. 오늘 칠라스로 가지 말고 페리메도스에서 하루 잘것인가? 사실 그닥 고민하지 않고 오늘은 페리메도스로 가기로 했다. 즉흥적으로 계획을 변경하는게 내 여행 스타일 아닌가. 그러다가 정말 좋은 곳이 얻어 걸릴수도 있을테니깐 말이다.

버스스탠드에서 다시만난 아리프. 지난번에 노숙을 할때 우리를 지켜주었던 시큐리티 가드다. 짧은 시간동안의 만남과 헤어짐이, 반가움과 아쉬움 사이의 감정의 폭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냥 무작정 잘 모르는 다음 마을로 이동하는 여행이 즐겁다. 2~3시간정도 불편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지만 그 정도는 감당 가능하다. 이동시간이 짧을 수록 빨리 빨리 다음여행지로 이동하기 쉬운것 같다. 훈자는 올라가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거의 8일을 쉬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는것이 내 스타일의 여행이 아님을 알면서도 다시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던것 같다. 딱히 계획도 없었고 말이다. 어느 정도 계획을 할 필요는 있다.

라이콧 브리치 도착했다. 생각 보다 마을이 작았다. 마을이라고 할 수 없고 그냥 호텔 하나만 있었다. 순전히 페리메도스를 위한 장소 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걸어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숲길이 아니라 험한 바위길이다. 1시부터 5시간을 땡볕에서 올라간다는건 할수 없었다. 그래서 다들 지프를 타고 올라간다고 하는데 지프 가격이 너무 비쌌다. 7천 루피라고 한다. 거의 4~5일 생활비다. 정말, 그정도의 값어치를 하는 트레킹 코스인가??

이 가격 대비 이런 여행지라면 안가는게 맞는것 같다. 그런데 오늘 무작정 아무 마을에서 하루 묶고 싶었다. 딱 그것때문에 온건데 여기 호텔도 하루 묶는데 7천 루피라고 한다. 잘꺼면 올라가서 자는게 맞다. 거의 1시간을 고민했다. 눈 딱 감고 페리메도스에 가기로 했다. 고작 500루피 깎어서 6500에 지프 왕복이다. 동행이 있으면 더 저렴하게 탈 수 있어서, 30분정도 기다렸지만 이렇게 여행자가 없는 나라에서 동행을 구하는것은 불가능 했다. 이왕 가기로 한것 즐기기로 했다. 뭔가 새로운 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프로 페어리 포인트 까지 가는길. 내생에 이렇게 불편한 길은 처음이다. 2시간동안 엄청난 진동과 흔들림 속에서 괴로워했다. 가는 내내 6500루피가 떠올랐다. 진짜 값어치를 하는장소인가..하는 의문을 갖으면서. 솔직히 우울했다. 겁나 비싼 가격에 비해 가는 길 경치가 너무 구렸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웠다.

지프차로 이동가능한 제일 끝부분인 페어리 포인트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한다. 페어리 포인트에 있는 호텔에서 짐을 재정비하고 큰짐은 맡겼다. 어차피 하산할때 다시 이곳으로 복귀하기 때문이다. 일단 배가 고파서 점심을 시켰는데 빨리 되는 음식이 누들이라고 해서 시켰다. 주방을 보니까 어이없게도 그냥 라면을 끓이려 하고 있었다. 그럴바에는 돈도 아낄겸 내가 가져온 라면을 줬다. 그래서 가스비 100루피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페리메도스는 외국인이 올라가려면 경찰과 동행해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 문제될 일은 전혀 없지만 정부의 정책이라고 한다. 이렇게 외국인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데 파키스탄이야말로 여행자의 천국아닌가? 엉겁결에 무료로 가이드가 생겼다. 이름은 나세르 나이는 32살이라고 한다. 나보다 1~2살 많다고 해서 사실 깜짝놀랐다.

나세르와 함께 올라가는 길. 경치는 그닥 멋지지 않았다. (울터 트래킹에 비해서) 진짜 7천 루피를 주고 올라올 만한 장소인가?? 경치가 구리니 3시간동안 나세르랑 엄청 떠들었다. 내가 만난 무슬림 중에 가장 날나리 같이 보였다. 이친구와 대화하면서 느낀것이 무슬림이 생각보다 성적으로 개방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자꾸 성적인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근데 어이없는것은 하루에 5번인 이슬람 예배시간은 또 엄청나게 철저히 지킨다.

AK-47 소총을 든 경찰 나세르와 함께 등반. 무척 안전하게 느껴짐

나름 기도시간을 꼬박꼬박 챙기는 날나리 무슬림 나세르

하지만 무척 유쾌하고 재미있는 녀석 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때문에 혼자 걷는 이 길이 외롭지 않고 즐거웠다. 그러나 점심을 작은 라면으로 떼워서 그런지 또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점점 힘이 들었다. 거의 도착할즘에는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이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드디어 도착한 페리메도스는 정말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넓은 잔디밭에 주위에는 설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8천미터 짜리 낭가파르밧이 코앞에 위치해 있다. 낭가파르밧을 가장 가까이 볼 수있는 휴양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치 구경은 필요없고 일단 밥부터 먹고 싶었다. 나세르의 동생이 운영하는 green * hotel에 들어갔다. 텐트 대여 가격은 500루피라고 한다. 생각보다 저렴해서 텐트에서 자보기로 했다. 저녁이 되니 밖이 엄청 추웠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기때문에 해가 있는동안 어떤것도 먹지 않는다. 나세르는 물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7시 20분이 되는순간 막 먹는것이다. 7시 20분이 되서 우리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400루피짜리 치킨+짜파티를 먹었다. 나는 음식을 생존을 위해 먹나보다. 아무거나 먹어도 다 맛있다. 그곳에는 나세르 뿐만 아니라 그 동생이랑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아궁이에 둘러앉아서 몸을 녹이고 대화를 했다. 나는 일기를 쓰다가 애들이 사진을 보여달래서 지금까지 이동했던 사진들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즐거운 토크 시간이었다.

시간이 후딱 지나가서 벌써 10시가 되어 나는 텐트로 들어갔다. 내가 가져온 침낭 하나랑 여기서 빌린 침낭이 하나더 있어서 생각보다 따듯할 것 같았다. 원래는 패딩을 가져올까 말까 했었는데 무거울 것 같아서 가져오지 않았었다. 저녁시간이 되어 계속 후회했지만 막상 텐트에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견딜만 할것 같았다.

그렇게 7천 루피 짜리 하루가 딱히 한것도 없이 그냥 날라가는 순간이었다.

아늑한(?) 텐트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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