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감동한 일이 있었는가?

            2017년 03월 16일
            휴직 38 일째

오늘 감동한 일이 있었는가?

수원에서 병원진료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중간에 롯데리아에서 버거 단품만 먹었다. 오늘 돈을 많이 써서 아껴야 해서 그랬다.. 먹는데는 아끼지 말아야하는게 그게 잘 안된다.

기차타고 서울역으로 오면서 류시화 에세이를 읽으면서 왔다. 서울역에서 연신내역으로 버스타고 올때도 마찬가지로 그 책을 읽으면서 왔다. 한 글한글이 주옥같고 생각치 못했던 깨달음을 주는 일화들이 많았다.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드릴지 고민하게 한다.

연신내에서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노스페이스에서 고어텍스 자켓을 구경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이 닫혀있었다. 시간이 8시반이라 늦었나보다. 하는 수 없이 독바위역쪽으로 걸어서 집에 가기로 했다. 가는 중간에 까페나 들릴까? 하는 생각 으로.

가는 길에 호떡 가게가 있었다. 나는 질퍽한 밀가루 반죽에 핵달콤 흑설탕이 흘러내리는 그런 호떡을 수년전부터 먹고 싶었다. 정말 수년동안 먹지 못했다. 그이유는 내가 이런 호떡가게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조차 이런 호떡을 못봤다. 호떡 가게가 있어 봐짜 건식 호떡?이다.

드디어 호떡 가게를 발견한 나는 반가운마음에 가게 앞에 섰다. 가격도 단돈 800원이다. 마침 현금도 있었다. (이제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려고 한다. 이런 작은 가게에는 무조건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호떡 한개를 주문하고 기다리는중. 아주머니께 요즘 이런 호떡가게가 없어서 통 호떡을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흐뭇해 하신다. 여름에도 하시냐고 물었다. 여름에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름에는 무엇을 팔지 고민중이라고 하셨다. 원래 가게를 하셨다고 한다. 다행이 길가에 사람들은 많이 지나다닌다고 하신다. 나도 지나칠 때마다 자주 사먹어야겠다.

다른 손님이 왔다. 호떡 4개를 주문했다. 기름에 자글자글 익고 있던 호떡이 모두 익었다. 아주머니께서 호떡 4개를 먼저 포장하시는것 같다. 잉?내가 먼저 주문했는데.. 왜 나를 먼저 주시지 않지.? 그런데 마지막 남은 내가 먹게될 호떡은 너무 조그맣다. 왜 나부터 안주고 나중에 온사람부터 주신건가? 왜 내 호떡만 이렇게 작은가!! 나 먼저 주셨으면 내 호떡은 더 컷을것 아닌가??!! 갑자기 작은 괴로움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작 800원짜리 호떡하나 가지고..

조금 전에 읽었던 류시화의 글들이 생각 났다. 이미 일어난 사건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고통은 그 사건에서 비롯되는것이 아니라 그 사건 이후에 하게되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다행이 조금전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침착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나 같았으면 이런 일에 계속 분노를 했을 것이다. 비롯 아주 사소하고 작은 분노일지라도 말이다.

고통은 사건이 발생할때가 아니라 그 사건을 다시 떠올릴때 생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다시 고통을 느낄 필요 없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사건때문에 나는 어떤 새로운 것을 경험했고 평범한 일상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되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이든다.

"우리가 겼는 일들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사건들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어난다. 정신에 가장 해로운 일이 '되새김'이다. 마음속의 되새김은 독화살과 같다."

  • 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여행자의 삶을 사는것은 즐겁다. 평범하게만 보였던 매 순간순간들이 이따금 특별해지는 순간이 된다. 그것은 나 스스로 그 순간에 더 머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얻은 값진 경험이다. 여행은 어디에 갔는지가 중요한것이 아니다. 그 과정중에 얼마나 많은것들을 보고 느꼈는지, 그리고 얼마나 그 순간을 깊이있고 충실하게 채웠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방금 호떡가게에서 일어났던 일이 평범하게 화가 한번 나고 지나칠 수 도 있었던 일이지만 나는 그 순간을 더 깊이 있게 느끼고 싶었다. 그랬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새로운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감동한 일이 있었는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곱씹어봐야할 생각이다. 더 풍부한 느낌과 경험, 사색과 감동을 얻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건이 필요한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건이라도 내가 그것을 의미있고 특별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그것이 여행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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