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여인숙

            2017년 03월 09일
            휴직 31일째

내 영혼의 여인숙


알람이 울렸다. 10분 뒤 다시울림으로 맞추고 다시 누웠다. 10분 동안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옆집 강아지 짖는소리 때매 받는 스트레스가 또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나 도데체 이사를 왜 한건가?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온 것인데 이곳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 이전 살던 고담시티에서는 적어도 매일 똑같이 반복적으로 고통당하지는 않았다. 나는 소리에 굉장히 예민해서 이전집에도 소리때문에 제일 큰 스트레스를 받았었는데 이곳에 와서 더 큰 소리 때문에 괴롭다. 이 집은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들어올 때마다 현관문 앞에서 개가 짖어대고, 그 때마다 꼭 할머니가 밖으로 나오셔서 개가 밖으로 나와 내 코앞에서 짖어댄다. 할머니가 밖으로만 안나오시기만 해도 덜 할텐데 꼭 밖으로 나오신다.

누운채로 이런 온갖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있다가 핸드폰을 열었다. 친구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어제 내가 올린 블로그 글 이번 이사 실패였나를 보고 온 카톡이었다. 내게 내 영혼의 여인숙이라는 단편 에세이 한편을 보내 줬다. 놀라웠다. 작가가 처했던 상황이 어쩜 그리 나와 똑같은지. 그리고 내가 느끼는 이 고통이 내가 스스로 만드는것은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하는 정말 기가막힌 글이었다. 그리고 정말 괴로워 하고 있는 순간에 이 글을 보내준 친구도 신통방통했다. 고마웠다.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세상이 어떤가 보다 우리가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거가 더 중요하다."

글에서 인도의 한 여인숙 주인이 작가에게 한 말인데 무척 인상 깊었다. 이 에세이는 두고두고 읽어야 겠다.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 글이다. 생각 해 보면 방금 느낀 개짖는소리에 따른 고통은 실제로 당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끄집어내 생각한 고통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글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고통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것 같다.

세상에 100% 나를 만족시키는 집은 없다. 그런데 나는 항상 100%를 원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얻을 수 없는 100%를 얻기위해 지나치게 치열했다. 이사와서 겪고있는 일련의 사건들, 이미 일어난 일들에 불평만 한다고 해서 달라질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것또한 내 삶의 모습이고 내가 처한 순수한 환경이다. 내 이사 첫번째 목표는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는것 아니었나? 그 환경이란 즐겁고 기쁜 환경만 뜻하는것은 아니었는데 잊고 있었다. 바뀐 환경 모두를 순전하게 받아드리려고 하지 않았던것이다. 오늘 친구가 보내준 신통방통한 글이 내게 어떤 작은 해결 가이드를 제시해준것 같은 느낌이다. 그 가이드 대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것은 결국 가이들을 읽는 나의 몫이다.

회사 친구들과의 만남


우면동 캠퍼스에있는 회사 친구들을 만났다. 잠깐이었지만 오랫많에 좋은 사람들과 대화.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면동 환경이 한적하니 좋다. 복직을 하게 되면 전배를 신청해서 이곳에서 일해보고싶다. 친구가 르 코르뷔지에 티켓을 줬다. 마침 며칠전에 지하철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궁금해서 검색해봤던 전시인데 신기했다. 장소는 근처 예술의전당이다. 오늘 온김에 가서 구경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여러모로 친구들에게 신세 진 하루였다. 일단 먼저 수원 망포에 있는 병원에가서 엉덩이에 주사를 맞기로 했다.

이상근 증후군


한 2년정도 되었는데 의자에 앉아있을 때 다리저림 증상이 있다. MRI로 허리를 찍어봤을때 이상이 없다고 해서 이상근 증후군을 의심하고 치료중에 있다. 그런데 이상근증후군이 확실히 맞는건지도 잘 모르겠다. 오랫동안 스트레칭 운동등을 했는데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을 뿐더러 허벅지에 압박이 있을때 다리저림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허벅지 햄스트링 근육에도 주사를 맞았다. 주사는 신경블록이다. 성분은 국소마취제와 생리식염수이다. 그것을 근육에 주사를 놓으면 염증반응이 생겨 조직이 새로 교체되고 국소마취를 통해 통증을 완화한다. 그뒤 초음파를 이용해 충격파요법 치료를 받는다. 오늘 허리 엉덩이 이상근 허벅지를 맞았는데 조금 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여행중에 많은 시간을 버스에 앉아 이동하는데 보낼 텐데 앉아있을때 다리가 너무 불편하니 걱정이 된다. 여행 전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최대한 통증을 없애 놓아야 하는데..

희망적이지 않은 블로그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통이나 스트레스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언제부턴가 쉽게 짜증이 나고 지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몇몇 지인은 내 블로그가 다소 어둡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진짜 현재 내 모습이다. 지금의 나는, 적어도 혼자 있을때 나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최근 여행작가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다. 여행기로써 이 책을 읽고 무척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어두웠기 때문이다. 여행기는 항상 밝고 희망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겐 울림이 컸다. 알 수 없는 여운이 오래 갔다. 보여주기위한 SNS형 행복 여행기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진솔하게 느껴졌다. 내 블로그는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 같다. 블로그 시작 부분 글에도 썼지만 항상 행복하고 희망찬 경험만 할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서 인간은 행복보다는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존재라고 했다. 진화론적으로도 맞는 이야기다. 생명체는 고통에 민감해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내 글에는 고통의 경험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끝내면 사람이 점점 파괴되어 버리지 않을까. 삶이란 결국 문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도를 해야하지 않을까.

뻔해 빠진 행복 기록만 있는 글은 싫다. 삶의 온전한 경험들을 기록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희망적이고 밝지만은 않은 블로그다.





마지막으로 류시화 작가의 저서지구별 여행자 의 한 단편인 내 영혼의 여인숙 전문을 소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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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여인숙


우주를 떠돌다 지구라는 여인숙에 온 한 영혼이 있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몇 군데 직장을 다니다가 모든 것을 집어치우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그 장소가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닫기에 좋은 경험들을 그에게 많이 가져다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그는 자주 고통에 대해 생각하곤 했었다. 스스로의 삶이 너무 피곤하다고 여겨질 때도 많았다. 더듬이가 끊어진 여치처럼 생의 방향을 잃고, 눈을 깜박이거나 숨쉬는 것마저 힘들 때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삶을 흘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가 갑자기 인도로 떠난 것은 어쩌면 행복은 때때로 단순한 깨달음과 함께 찾아온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드 시타람' 여인숙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여인숙 이름 앞에 왜 '올드'가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올드의 진정한 의미까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고풍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오래되고 형편없이 낡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몹시 늙었다'는 뜻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여인숙 안에는 매우 늙은 노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여인숙 주인 올드 시타람 씨였다. 그는 왠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 흥미로운 어떤 것들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그는 숙박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방부터 구경하라고 말했다. 노인과 내가 계단을 올라가는데,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나보다 먼저 방을 점검하고 나오는 중이었다.

인도의 모든 신은 고유의 동물을 타고 다닌다. 시바 신은 소를 타고 다니고, 코끼리 신 가네시는 쥐를 타고 다닌다. 코끼리가 어떻게 쥐를 타고 다닐까 의아해 하겠지만, 인도의 쥐가 얼마나 큰가를 알면 그 의문은 금방 풀린다.

쥐는 우리를 보더니 앞발을 땅에 짚고서 약간 당황해 했다. 그러자 나를 안내하던 올드 시타람 씨가 손을 내저으며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나에게 하는 발인지 쥐에게 하는 말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가 왜 그토록 당당하게 방부터 먼저 구경하라고 큰소리를 쳤는지 나는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누가 봐도 지저분하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 방이었다. 벽의 페인트 칠은 벗겨지고, 침대는 그야말로 화장터 장작으로 쓰여지기 직전이었다. 여러해 동안 밑바닥 여행을 전전해 온 나로서도 선뜻 발을 들여놓기 힘든 방이었다.

내가 "바후트 간다헤(너무 더러워요)!" 하고 말하자, 주인은 또 다시 "네버 마인드(신경 쓰지 말라)!" 하고 손을 내저었다. 나만 신경 쓰지 않으면 전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날은 저물고, 다른 곳을 찾기엔 여행에 지친 몸이었다. 아무래도 방값을 다 내는 게 억울해 깎아 달라고 요구하자, 올드 시타람씨는 인도인답게 매우 독특한 주장을 폈다.

"숙박비를 깎는다고 해서 방이 새것이 되는 건 아니잖소. 당신이 지금의 이 방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방값을 깎는다 해도 완벽하게 만족하진 못할 것이오."

너무나 그럴듯한 논리에 나까지 덩달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그는 볼펜을 세우며 자못 훈계하듯 말했다.

"한 가지가 불만족스러우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법이오. 당신이 어느 것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있다면, 당신은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오."

다 늙어 앞니가 두 개나 빠졌지만 입심 하나만은 당해 낼 재간이 없는 노인이었다. 문제는 아무리 눈 씻고 둘러봐도 그 여인숙에는 만족할 만한 것이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멘 채로 마냥 입씨름을 하고 있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그곳에 짐을 풀기로 했다. 그러나 정말로 짐을 푼 건 아니었다. 방안이 너무 더럽고 지저분해 도저히 배낭을 풀어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씻지도 않고 낡은 침대에 웅크려 새우잠을 잤다. 베개가 시멘트자루처럼 딱딱해, 날이 밝았을 때는 목이 뻣뻣이 굳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목운동을 하자 뿌지직 하고 목뼈에서 금 가는 소리가 났다. 인도의 여인숙들은 베개 속에 도대체 무엇을 집어넣길래 그토록 딱딱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세수를 하려고 배낭을 연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밤사이에 누군가 배낭을 마구 들쑤셔 놓은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다름아닌 어제의 그 쥐였다!

나는 벌린 입을 하고 당장에 여인숙 주인에게로 달려가 따졌다. 쥐는 배낭을 뚫고, 스웨터를 구멍 내고, 비닐 봉지에 든 비상식량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꿈속에서 밤새 톱질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쥐가 배낭을 갉아 대는 소리였던 것이다. 정말 신이 타고 다닐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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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강력한 건 올드 시타람 씨의 입심이었다. 내가 볼멘소리로 항의하자, 그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경건한 태도로 카운터 위의 코끼리 신상에 대고 연기 자욱한 향을 피워 대며 말했다.

"신이 준 성스런 아침을 불평으로 시작하지 마시오. 그 대신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불평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을 수가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그것으로부터 뭔가를 배우는 일이오."

쥐구멍이 난 배낭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치 인도 설화에나 나옴직한 여인숙 주인과 입이 뾰족한 새앙쥐였다.

나는 일부러 입을 삐뚤게 하고서 말했다.

"이제 보니, 이 여인숙의 스승은 스리 생앙쥐난다군요. 그걸 미처 몰랐소이다."

올드 시타람 씨는 내가 비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난데없이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하고 나섰다.

"어제 죽은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이 있지 않소."

배낭에 난 쥐구멍을 간디의 명언으로 때우려는 수작이 역력했다. 이제 보니 그는 얼굴 생김새까지도 간디를 닮아 있었다.

결국 나는 본전도 못 찾고, 아침도 거른 채 바늘귀와 씨름하며 배낭과 스웨터를 꿰매야만 했다. 스웨터는 올이 풀려 꿰맬수록 구멍이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바느질을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로부터 내가 배울 점이란 이런 말도 안 되는 여인숙을 하루빨리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느질을 끝낸 뒤, 나는 어지러운 영혼을 위로할 겸 근처 힌두 사원을 찾았다. 눈빛이 매서운 문지기는 내가 힌두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호하게 입장을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10루피짜리 종이돈을 네 겹으로 접어 뇌물로 바치자, 문지기의 눈빛이 사랑으로 넘치고 단호한 빗장도 금방 풀렸다.

그런데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신발과 함께 허리띠를 문 밖에 두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원 안을 기웃거리는 동안 바지가 자꾸만 흘러내려 신에게 제대로 경배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엉거주춤 사원 구경을 마치고 여인숙으로 돌아온 나는, 날이 더워 방 옮기는 일은 엄두도 못 내고 곧바로 공동 세면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세면장의 샤워 꼭지가 어찌된 영문인지 한 바퀴 비틀어져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을 틀면 일단 물이 천장을 타고 1미터쯤 흐르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결국 샤워꼭지 밑이 아닌 엉뚱한 곳에 서서 샤워를 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천장에서 흘러내린 께름칙한 물로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한 뒤, 나는 여인숙 주인에게 투덜거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인도 감옥이라고 해도 여기보단 낫겠어요."

아니나 다를까, 옥상의 긴꼬리 원숭이를 노려보며 올드 시타람 옹께서 한 말씀하셨다.

"당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는다면, 황금으로 만든 샤워 꼭지를 갖는다 해도 당신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오!"

나는 인도의 소처럼 혀를 내두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옥상에 빨아 널은 내 티셔츠를 누가 훔쳐 간 것이다. 여인숙 종업원은 원숭이 짓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엔 원숭이처럼 생긴 그 종업원 짓이 틀림없었다. 몇 년 동안 인도 여행 때마다 입고 다닌 소중한 티셔츠를 잃어버린 나는 화가 나서 종업원을 윽박질렀다. 앞가슴에 지혜의 눈이 그려진, 낡았지만 소중한 티셔츠였다.

내가 종업원과 이마를 맞대고 노려보고 있을 때, 카운터에 앉아 있던 올드 시타람 씨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시오?"

내가 말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했다.

"행복의 비밀은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얻었는가를 기억하는 데 있소. 당신이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기억하는 일이오."

그는 지금 내게, 아끼는 티셔츠를 잃긴 했지만 내 자신이 이미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단순한 소똥 철학자나 궤변론자가 아니었다. 그는 시종일관 내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 일로부터 배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통이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것을 사실 올드 시타람 씨 개인만의 철학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고대 인도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상이었다.

기원전 천 년 경 베단타 학파의 한 현자는 말하고 있다.

'그대가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해선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대가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걱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실랑이를 하며 며칠을 올드 시타람 여인숙에 머무는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주인 남자로부터 자주 설법을 들어야만 했다. 하루는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주방의 더러운 위생 상태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자, 그가 말했다.

"난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여인숙을 운영해 왔지만, 늘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소. 한쪽은 언제나 불평을 해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쪽은 똑 같은 상황에서도 늘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이오. 당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고 싶은가는 당신 스스로 선택할 일이오."

그리고 나서 그는 덧붙였다.

"당신은 지금 인도에 여행을 온 것이지, 불평을 하러 온 건 아니잖소."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옳았다. 다른 외국인 투숙객들은 옥상에서 일광욕까지 즐기며 잘도 지내는데, 단돈 50루피(1,500원)를 내고 묵으면서도 나만 유독 불평이 많았다. 그것은 단지 여인숙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내 안에도 있었다.

올드 시타람 씨의 지적은 '세상이 어떠한가보다, 우리가 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에 다름아니었다. 그의 지적대로 나는 아직도 이 여행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 준 올드 시타람 씨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

서너 해 뒤, 내가 다시 올드 시타람 여인숙을 찾았을 때 그곳은 놀랍게도 "뉴 시타람" 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타람 씨는 앞니를 다 빠뜨린 뒤 구부정한 허리로 갠지스 강을 건너 세상을 떠나고, 풍채 좋은 아들 시타람 씽이 그곳을 멋진 여인숙으로 개조해 놓았다. 간판도 새롭고, 이름답게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올드 시타람은 간 곳이 없었다.

나는 뉴 시타람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다른 곳으로 떠났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금빛 나는 샤워 꼭지와 푹신한 베개가 있었지만, 올드 시타람 씨가 갖고 있던 어떤 영적인 향기가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올드 시타람 여인숙은 내가 인도 여행에서 묵었던 그 어떤 여인숙보다 명실공히 더없이 독특하고 인상적인 곳이었다. 나는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을 얻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구라는 여인숙 역시 나는 불평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을 온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올드 시타람 여인숙에서 내가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다.

  •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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