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로운 트레킹 시작

                    2017년 05월 16일
                    인도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계속 쌌다. 어제는 작은 가방에 짐을 챙겨서 출발하려고 했는데 라즈가 빌려준 텐트를 도저히 같이 가져갈 수가 없어서 여느 트래킹처럼 메인가방을 가져가기로 했다. 다 싸고 보니 또 무거웠다. 무슨 짐이 이렇게 많은지. 라즈와 무거운 짐을 위로 올릴건지 아래로 내릴건지에 대해서 언쟁을 했다. 이 녀석은 점점 꼰대 마냥 나를 가르치려 든다. 센터 오브 웨이트를 몸의 무게중심과 맞추기 위해서는 무거운짐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단다. 내가 검색해서 알고 있는바로는 무거운짐이 위로가야 센터가 맞는거다 이자식아.

오늘은 짐을 꾸려야 해서 아침식사를 7시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라즈가 식사를 할 때 옆에있었는데 우리는 K pop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언제 시간이 될때 라즈와 진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이친구와 2~3시간 대화한 적이 없었다. 방만 공유했지 일정은 각기 다르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친구 덕분에 텐트를 빌려서 오늘 정말 기대되는 하루가 될것 같다. 텐트에서 자는 캠핑이라 나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진짜 기대된다. 게다가 어제 친구들과 캠프화이어를 할 생각을 하니 또 기다려졌다. 아침을 간단하게 하고 10가 조금 넘어서 우리는 만났다. 6명이 함께 걷는데 뭔가 든든한 기분이었다. 안나푸르나에서도 이렇게 친구들과 같이 걸었으면 기분이 새로웠을것 같기도 하다. 함편으로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다. 가는 길에 새소리가 났었는데 동행이 있다보니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멈춰서 감상하고 다시 풀발할 수는 없었다.

가는길에 특이하게 생긴 원숭이를 만났다. 처음보는 원숭이었는데 이렇게 트래킹 중 야생동물을 만나니 즐거웠다. 바라나시에서 잠깐잠깐 보고 깊이있는 대화를 한적이 없었던 친구와 좀 더 대화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일을하다가 모은돈으로 1년정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사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나는 돌아가야할 날짜가 딱 정해져있기 때문에 모든 일정이 촉박하고 시간이 부족하다. 심지어 나는 이곳 맥간을 떠나는 버스표도 이미 구매해놨다.

트레킹 구간은 비교적 쉬웠다. 계속 일정한 기울기의 길이었다. 같이 가니 생각보다 시간도 금방가고 속도도 빠르게 느껴진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중간에 있던 가게에 쉬기로 했다. 식사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유명한 메기 라면을 시켰다(물고기 메기아님) 엄청 맛있었다. 그래서 담에 또 사먹기로 했다.

그러다가 비가 점점 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 졌다. 비를 맞으며 산에 오르기 싫었는지 비맞으며 텐트에서 자는게 싫었는지 한두명씩 포기하고 내려가기로 하는것이다. 어제 그렇게 준비했던 캠프파이어는 어쩌나..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 친구는 비가 와서 정말 가기 싫었는지 못가는 이유를 수가지를 나열하기 시작한다. 방 체크아웃도 안했고, 원래는 별 사진찍으러 가려고 한거였는데 별사진을 못찍으면 갈 의미가 없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걸로 봐서는 오늘 별사진은 못찍을 것같다. 등등등. 하기 싫은 이유가 생기면 끝도 없다. 모두 그렇게 포기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멘붕..

그들이 같이 하산하는게 어떻냐고 했다. 잠깐 고민 했지만. 나는 내가 친 텐트에서 잘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몰랐다. 나는 숙소가 아닌 텐트를 치고 자보는 경험을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가 와도 상관없었다. 비를 맞으며 개고생을 하면 좀더 기억에 많이 남지 않겠나. 나는 올라가겠다고 했다. 모두 놀랐지만 나는 그래도 올라간다고 했다. 한번 하기로 한걸 시덥잖은 요인으로 인해 쉽게 포기하는것은 내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게 그들과 헤어졌다.

나는 이제 혼자다. 원하는 대로 쉴 수 있고 원하는 장소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나는 내 텐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잠잘곳도 내맘대로 선택이 가능하다. 집이라는 공간에 얽메이지 않는것은 내게 극도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나만의 텐트를 짊어지고 걷는 이순간 나는 참된 자유를 느꼈다. 이런 자유로움은 처음 경험했다. 기분이 날아갈것 같았다. 갈수록 텐트를 가지고 다니는것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든지 공짜로 잘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경량 텐트를 사서 북한산에서 자볼 것이다. 꼭 해보고 싶다!

한동안 올라가다가 식당같은 장소를 만났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 멘붕. 진짜 이상태에서 텐트를 치고 잘수 있을까? 심지어 나는 한번도 텐트를 쳐본적이 없다. 지금 가지고 가고 있는 텐트도 사용법을 모르고 가는거다. 비를 그렇게 맞으며 텐틀르 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 투성이로 댜시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체킹 포인트에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나는 여권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자꾸 내려가야만 하는 핑계가 만들어진다. 나를 흔들리게 한다. 어떻게든 올라가야했기에 나는 베낭에 있던 안나푸르나 트레킹 퍼밋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다행이 통과할 수 있었다. 올라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신상 정보를 적고 32번을 부여받았다. 무슨 번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날씨가 우려되서 계속 물어봤다. 이 날씨에 캠핑이 가능하냐. 오늘 밤 내내 비가 올것같느냐 등등. 답변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결론은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 밖에 없었다.

두 인도인 청년을 만나서 같이 대화하며 올라갔다. 새 친구가 생긴것이다. 이름은 아르웬과 웸디이다. 아르웬이 영어를 할줄 알아서 계속 대화했다. 직업은 S/W개발자였다. 인도인중에 S/W개발자가 정말 많은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정상까지 거의 계속 동행했다. 아까 같이 출발했던 동행은 모두 안나푸르나 경험이 있던 친구들이었고 모든 장비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친구들은 방수 기능이 있는 어떠한 옷과 가방도 없이 비를 맞으며 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오늘 캠핑도 한다고 한다. 참 뭐라 말하기 그렇다..

바람도 겁나 불고 비도 거세진다. 빗줄기가 약해졌다가 세졌다가를 반복하는데 이 상태는 오늘 하루종일 올 비같다. 여태까지 이런 날씨는 이곳에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점점 심해지기도 하고 다시 멈추기도 했다. 이런 날씨에 정말 캠핑이 가능할지 계속 걱정하면서 올라갔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내려오는데 한 사람의 옷에 Don't give up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곧바로 포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들도 뭔가 화이팅을 했다.

Don't give up 어디선가 수도없이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내게 다르게 느껴졌다. 정말 신기했다. 그렇게 포기할 정도로 걱정하며 올라갔는데, 어떻게 이런 문장에 내 눈에 들어왔을까? 내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옷에 글자가 씌여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단 한명이 글자가 쓰여진 옷을 입고 내려갔는데 그게 Don't give up이었다.

나는 갑자기 이것이 어떤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주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포기하지 마라 할수 있다", "굳은 날씨를 극복하고 원하는것을 얻어라"라고 내게 말하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엊그제 라즈가 내게 말해준 숨겨진 메시지였다. 나는 그것을 깨닫고 무척 고무되었고 울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해낼 수 있을것 같았다. 이 거지같은 날씨를 극복해 낼 수 있을것 같았다. 안나푸르나에서 경험했던 그 경이로움이 다시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올라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에게 어땠는지 물아봤는데 다 좋았다고 했다. 오늘의 비를 맞으며 텐트를 치고 비속에서 자는 경험은 아마 내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중 하나가 될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역시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것은 내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장비도 가지고 있고 못올라갈 이유도 캠핑을 못할 이유도 없다.

거의 정상에 도착해서 한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조언을 받았다. 요즘은 낮에 비가오고 저녁에 개는것 같다며 캠핑해도 좋을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올라가는 길에 인도인 여행자들이 많아서 상당히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다들 너무 친절하고 좋다. 인도인에 대한 선입견들이 인도에 직접 와서 많이 사라진것 같다. 사기치고 훔치는것 것은 극히 일부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사람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일부는 있다.

안나푸르나에서 2주동안 고생한 이후 산과 트레킹에 질려버려서 다신 안갈줄 알았는데 역시 나는 또 산에 오르고 있다. 막상 다시 트레킹을 시작하니 기분이 너무 좋다. 그리고 산위에서 캠핑이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 코스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도착해서 먼저 텐트를 칠 장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다행이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있었다. 오늘 비가 많이 내릴 것이기 때문에 약간 비탈진 장소에 설치를 시작했다. 텐트를 쳐본 경험이 전혀없었지만 생각보다 쉬웠다. 그렇게 완성한 텐트를 보니 엄청나게 뿌듯했다. 진짜 행복했다. 오늘은 나만의 자유로운 집이 생긴것이다.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몰려왔다. 집에 얽메이지 않고 아무데서나 잘수 있는것. 이것이 진짜 자유다!

도착 텐트 설치완료

텐트를 모두 치고 음식을 파는 천막 가게 아저씨랑 친해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거기있는 사람들과 대화했다. 행복했다. 혼자 텐트를 짊어지고 온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그것이 나에게 무한한 성취감을 주었다. 다들 하루에 800루피씩 주고 자는데 나는 공짜다!!

이곳은 정말 이상한 장소다 날씨 격변한다. 비가오다가 파란하늘이 잠시 보이기도 하다가. 구름이 산을 타고 넘어가기도 한다.

다시 텐트안에 들어왔는데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한 두시간가량 쏟아졌으나 내 텐트는 멀쩡 했다. 텐트가 이렇게 폭우도 잘막아주는구나! 내부는 아주 쾌적했다. 텐트 진짜 짱이다. 텐트에서 자는게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몰랐다. 한국에 돌아가서 반드시 텐트를 사서 베낭을 메고 캠핑을 다닐것이다!

빗줄기가 약간 약해진 틈을타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달밧을 먹엇는데 배고팠는지 진짜 맛있었다. 한참을 거기 있는 인도인들과 떠들고 즐거운시간을 보냈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다시 텐트로 왔다. 텐트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느낌.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한 시간정도 있었는데 비가 그쳤다? 8시반즘 비가 그쳤다!

다시 천막에 가보니 아저씨가 이제 no more rain이라고 한다!!!! 와. 그리고 오늘 별도 볼수 있다고 한다. !! 몇 분이 지나니 진짜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 틈사이로 보이기 시작해 점점 넓어졌다. 진짜 이런 날씨 속에서 별을 볼 줄이야! 별 봤다. 오늘 별 못봐서 내려간 애들이 있었는데 나는 별을 본 것이다!! 진짜 최고!!

한쪽엔 천둥이 치고 한쪽에 별이 쏟아지고 한똑엔 멋진 도시야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건너편엔 거대한 설산이 있다. 세상에 이런 특이한 광경은 첨이다.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든다. 하루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공짜 숙소도 있지 식당도 있지 하루 더 못잘 이유가 없다. 근데 하루를 더 묶을 라면 라즈에게 연락해야하는데 여긴 네트워크 연결이 안된다. 어쩔 수 없이 내일 가야할 것같다.

식당에서 계속 이야기하던 친구랑 같이 별을 보러 더 어두운곳으로 가기로 했다. 이 친구 이름은 saahil dama 이고 뭄바이 근처 도시에서 산다고 한다. 법대를 졸업해서 곧 뱅갈로 IT관련 변호사 사무소? 에서 일할거라고 한다. 우리는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계속 대화했다. 궁금한것이 참 많은 친구라 나도 할이야기가 많아서 좋았다.

점점 추워졌지만 나는 패딩에 후리스에 긴팔 반팔을 입고 있어서 전혀 춥지가 않았다. 아까 올라오는 길에 장갑도 하나 샀는데 신의 한수 였다. 나는 장갑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체온 보존을 위해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별보러 나오기로 했다. 숙소에서 일기를 쓰고 다시 나왔는데 구름이 다시 껴서 그냥 자기로 했다.

텐트를 칠때 반드시 평평한곳에 쳐야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너무 기울어져서 자꾸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래도 피곤했는지 잠에는 들었지만 새벽 5시에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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