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세계지도를 벽에 붙였다.

            2017년 02월 13일
            휴직 8일째

그래서 세계지도를 벽에 붙였다.


2주 뒤에 이사 및 집정리를 마치고 바로 여행을 가고싶다. 그러나 그냥 막연히 여행을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지 구체적인 계획이나 목표 같은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실 걱정되고 불안하다. 1년이라는 자유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올것 아닌가? 여행을 가긴 가야 하겠는데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어떻게 준비 해야할지..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하다. 그렇다고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계획 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더 답답한 거다.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 어려우니 계속 미루는 습관 때문에 항상 괴롭다.

한대용이형을 만났다. 이 사람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5년전에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기도 했고, 전세계 도시 중, 한달에 한도시씩 살면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진짜 자유인이다. 이 형은 내게는 여행 스승과도 같은 사람이다. 4년전 나는 남미 여행을 했었는데 당시 해외여행 경험도 없었고, 급하게 떠나서 준비를 많이 못했었다. 다행이 이 형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3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형을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자 마자 악상이 막 떠오르는것 같았다. 수 많은 대화가 오고가며 내 여행에 대하 생각들이 점점 구체화 되는것 같았다.

일단 당장 불안한 계획짜기에 대해서도 윤곽을 세울 수 있었다. 계획도 거창하게 필요없다. 세가지만 정하면 된다. 1. 가고 싶은 장소들 2. 그 장소를 가기 위한 정보(날씨/비자/진입방법) 3. 그 장소들을 연결하는 코스 짜기. 막연히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아프리카로 가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는데 형을 통해 훨씬 더 좋은 루트도 알게 되고 내가 생각치 못했던 경로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경험자의 막연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밖에도 수많은 꿀 정보들을 많이 받았다. 카우치 서핑과 한국요리 선물을 통한 현지인과의 접점 만들기. 여행중에 각 문화권의 다양한 노동 환경들 경험하기. 각종 유용한 서비스들(스카이스캐너,카약,트립어드바이져,노마드리스트), 잘 몰랐던 멋진 추천 지역들. 유용한 정보가 있는 서적과 커뮤니티. 등등.

대화 속에서 내 여행의 목표가 점차 선명 해졌다. 아래 세가지 경험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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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환경의 변화
  2. 관계
  3. 노동 환경

1. 환경의 변화
올해 가장 두려운 것은 시간의 속도이다. 1년이 지나고 뒤돌아봤을때 그 동안 아무것도 한것 없이 훅 지나갔다고 느끼게 될까봐 두렵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찾은 방법은 내가 처한 환경에 끊임 없이 변화를 주는것 이었다. 우리 뇌는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많이 활성화된다. 그것이 지나고 봤을때 시간을 충실하게 채웠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곧 여행을 갈 것인데도 무리하게 북한산으로 이사를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살짝 늦은감이 있지만 1년을 시작하기 전에 환경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환경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여행이다. 여행이야말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놓이는것 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하기 위한 환경의 변화를 끊임 없이 주기. 이것이 내 첫번째 여행의 목표이다.

2. 관계
여행지에서 여행자간의 관계를 형성하기는 무척 쉽다. 여행중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동행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단 하루를 봤더라도 몇년동안 연락하는 사이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여행이라는 하나의 관심사로 묶여있기 때문에 쉽게 친해지는 것이 가능한것 같다. 이런 수 많은 관계속에서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멋진 풍경이나 도시를 구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경험 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사실 여행자 친구만 경험하는것은 반쪽짜리라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 알게되었다. 진짜배기는 현지인과의 관계를 만드는것이다. 카우치서핑은 현지인과의 접점을 만들어 그 문화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게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여행자나 가능하면 현지인과의 관계를 경험하는것이 이번 여행의 또하나의 큰 목표가 될 것 같다.

3. 노동
평생 같은 직장에서 노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있는 조금 다른 노동은 무엇이 있을까? 이 좁은 땅덩어리의 규격화된 틀 속에만 있으면 더 다양한 노동을 생각하기 힘든것 같다. 나조차도 다른 대안을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 직장에 매여있는것 같기도 하다. 노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노동의 본질은 희생과 보상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노동력이라는 자원을 희생하여 그에따른 보상을 받는것이다. 이게 노동의 전부이고 모든 노동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노동이던 정신노동이던 3D노동이던지 간에 노동에는 우열이 없다. 그저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노동력과 그에 따른 보상을 교환 하는것일 뿐이다. 나도 조금 다른 노동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전세계 사람들은 어떤노동을 통해 살아가고 있을까? 이왕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노동과 삶의 방식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해 보고 싶어졌다.

여행을 통해 삶에 대한 훈련을 한다. 하나의 여행은 인생 전체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한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선택의 조합으로 구성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것중 한가지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무게를 재는 것 이라고 한다. 좋아보이는 모든것을 다 선택할 수는 없다. 한쪽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터키에서 유럽으로 올라 갈 수도 있고 아프리카로 내려갈 수 도 있다. 둘다 가고 싶어도 한쪽은 포기해야 한다. 정 둘다 가고 싶다면 그 이후의 다른 일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선택의 기로에서 정밀하게 무게를 재는 능력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우리는 항상 짐을 지고 산다. 그 짐은 내가 차마 내려놓지 못하는 모든것을 의미한다. 여행의 짐은 곧 삶의 무게라고 한다. 여행을 통해 내가 얻었다고 생각하는 내안의 기득권들을 모두 내려 놓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아무리 유용하게 사용될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순간을 위해서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한다.

혼자서 모든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는다. 그렇기에 내가 가진 모든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오늘 대용이 형과 약 3시간정도의 짧은 대화였지만 정말 큰 자극과 촉매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세계지도를 벽면에 붙였다. 큰일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 된다. 지도를 붙인 행위 자체로 내 여행은 시작된것 같다. 지금 옆에 붙어있는 지도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고 설렌다. 어릴때부터 세계여행은 돈도 많이 벌고 은퇴한뒤에 할수 있는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있어서 꿈도 못꿨다. 하지만 이 형을 통해 그런 고정관념들이 많이 깨졌다. 세계여행에 생각보다 큰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젊어서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젊을 때 해야만 한다!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 된다. 미래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하다. 오늘 대화를 통해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불안과 걱정들이 상당히 해소 되었다. 참 감사한 만남이고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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