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으로써 마을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

            2017년 06월 06일
            파키스탄

10시에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다. 아킬이 일어나기를 기다렸고 버스 정류장의 버스를 확인했다. 11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아킬과 다시 만났다. 아킬이 어딜 가냐고 한다. 왜 떠나느냐고 한다. 훈자에서는 1주일 넘게 머물렀으면서 왜 나란에서는 3일만 지내고 가냐고 묻는다. 나도 이들과 헤어지는것이 무척 아쉽다.

라마단 기간이라 점심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길에서 먹을 과자와 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아킬에게 얼마인지 물어봤다. 아킬이 너무 비싸서 너는 돈을 지불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방에 넣으라고 한다. 마지막 그의 호의였다. 몇 푼 되지 않은 과자였지만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아킬이 나의 나란이 어땠는지 묻는다. 나란은 내가 경험한 파키스탄 중 가장 친절하고 환대를 받은 마을이었다. 아킬은 대도시 사람들은 바로 옆집 사람과도 돕지 않는다고 했다. 나란같이 작은 마을만이 서로 돕는다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나란은 모든 현지인들이 서로 친구였고 길에서 만난 누구와도 서로 즐겁게 대화하는 곳이었다. 가게를 방문한 아이들을 아킬은 끌어 안아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아킬은 무료로 서슴없이 도와줬다. 그는 우리는 우주에 존재하는 작은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버는것 별로 중요치 않다.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것 알라께서 모든것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버스 출발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꼭 끌어안았다. 고작 2일동안 만난 사람과 이렇게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걸까? 내가 이방인이고 나는 그들의 손님이기 때문에 그럴수 있었던 것일까? 그뒤 악수를 하는데 나는 울컥했다. 눈물이 나오는것을 꾹참았다. 아킬의 눈 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뒤돌아서 각자의 길을 갔다. 서로에게 기쁜 기억만남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란을 떠나기전 찍었던 아킬의 사진


최악이 될뻔한 나란에서 나는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첫쨋날과 둘쨋날 오후까지 나는 움츠려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이 마을에 나혼자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혼자라는 사실에 여행중 처음으로 극도의 외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몇몇의 계기가 나에게 용기를 갖게 했고 나는 컴포트존을 깨려고 밖으로 나가는 시도를 했다. 그저 밖으로 나가서 부딛히는 시도 자체가 나에게 기회를 만들었다. 결국 즐거운 여행인지 괴로운 여행인지를 결정하는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여행중 배웠던것중 아주 값진 경험이자 변곡점이 되었다.

나 스스로 이방인이라 생각하고 움츠려들고 방안에만 갖혀있는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대한 현지화 되려고 노력해야한다. 불편한 시선속으로 당당하게 나가야한다. 현지인들과의 접점을 만드는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덥고 불편한 숙박등의 환경을 극복하고 밖으로 나가야한다. 그리고 최대한 기회를 찾아야한다. 그들과 어울릴수 있고 현지화된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그 이후 나는 최고의 경험들을 했다. 수많은 마을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줬고,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했다. 마치 마을 주민처럼 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구경하고 대화를 시도 했다. 가게에 죽치고 앉아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데려가려고 안달이었다. 무료로 식사를 한것은 물론 무료 숙박도 제공받기도 했다. 현지인이 묵고 있는 숙소에 초대받기도 하고 귀한 음식을 대접 받기도 했다. 필요한 생필품조차 나는 아킬을 통해 무료로 제공받았다. 그들은 내가 잠을 자는것 조차 아쉬워했다. 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랬다. 심지어 바릴은 내가 돈을 줄테니 여기서 한달이상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기서 나 스스로 귀한 존재라는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적어도 그들에게 나는 값진 존재다. 나는 이곳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것이다. 이세상에 그보다 더 기쁜일이 있을까.

이방인으로써 마을의 일부가 되어가는 느낌은 정말 황홀하다. 진정한 여행자의 삶이 이것이지 않을까. 여행이란 그저 관광지를 찍고 멋진 경치를 보고 사진을 촬영하는것으로 생각했던 그동안의 내 생각이 또한번 바뀌었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들을 통해서 진짜 깊은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없이 경험하는 관광지는 무언가 부족하다. 혼자 여행하는데도 외롭지 않은 이유는 여행중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접촉없이 홀로 관광지만 찍는 여행자는 없다. 모두 여행지에 찾아와서 서로 친구가 되고 현지인과 친구가 된다.


다소 불편한 로컬 버스를 타고 2시간 반을 이동한 끝에 Kawai 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엔 지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더 높은 고지에있는 Shogran 마을로 바로 올라가기로 했다. 800을 부르는 지프가격을 600까지 흥정하고 쇼그란에 도착했다. 쇼그란은 아주 작은 휴양지였다. 많은 호텔이 있었지만 나란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경치가 좋았다. 작은 가게들이 나열되어있는 bazaar(시장)도 마음에 들었다. 나란과는 달리 사람이 별로 없어서 부담스러운 시선도 없었다.

호텔에 1000루피로 숙박을 하게 되었다. 나란에서 느낀것 내가 너무 돈만 아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쇼그란에서는 돈을 좀더 지불하고 휴양하기로 했다. 호텔이 정말 좋았다. 지금까지 묶었던 숙소중 거의 최고였다. 숙박자들도 아무도 없었고 창문앞 경치도 좋았고, 침대와 이불도 깨끗해서 침낭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다. 이곳 쇼그란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엄청 많은 곳에 있다가 한적한 곳에 오니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 이곳에서 몇일 묶을 수 있을것 같았다. 여기서 편하게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다 가고 싶다. 그러다가 가끔식 숲에 산책을 가기도 하면 좋겠다.

나는 그냥 동네를 한바퀴 구경했다. 정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몇몇 가게 주인과 인사했다. 역시 그들은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 사람들과 친구가 될것 같은 예감이다. 나는 망고도 사고 토마토도 사고 꿀도사고 먹을것들을 왕창 샀다. 여기서 만큼은 돈을 아끼지 말고 즐기자는 생각에 돈을 쓸때 느끼는 죄책감도 없었다. 마을은 작았기 때문에 구경할것도 없었다. 나는 숲으로 향하는 트래킹 코스만 확인한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티비도 있었고 쇼파도 있고 저녁 시간에는 전기도 들어왔다. 나는 내가가진 돼지꼬리 히터로 물을 뜨겁게 만들었다. 온수가 없는 곳에서 전기만 있으면 나는 온수 샤워를 할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이 좋았다. 저녁 식사를 6시40분으로 예약하고 샤워를하고 빨래를 한뒤 식사를 했다. 치킨 카라이였는데 가격이 비쌌지만 그냥 먹었다. 그동안 돈을 아끼고 아꼈는데 좀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돈으로 즐길때는 충분히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저녁이 되어 방에서 일기를 대충 쓰고 티비도 보고 하다보니 10시가 넘었다. 달과 별이 밤하늘을 남청색으로 물들였다. 그 빛은 방앞에 있던 잔디를 짙은 녹색으로 적셨다. 나는 방안에 있던 추가 이불을 들고 잔디밭으로 나갔다. 주변의 인공 빛은 없었다. 오직 달빛 뿐이었다. 달빛은 상당히 밝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누워서 하늘을 향했다. 신선 놀음이 따로 없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계속 불었다. 고지대였지만 그렇게 찬 바람은 아니었다. 모기도 없었기 때문이 이곳에 침낭만 깔고 누워자면 딱일것 같았다.

그렇게 오랫만에 여유있는 하루가 지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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